나는 언제나 평범한 사람으로서 삶이 선물하는 간단한 기쁨들로 만족해왔다. 그러나 그 날, 모든 것이 바뀌었다. 낡은 참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가장 친한 친구 사라와 이야기하고 있었다. 우리는 종종 우리의 꿈과 열망에 대해 이야기했지만, 이번 대화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.

“근데 말야, 나는 항상 상상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어. 예를 들어, 양을 세면서 잠드는 거. 모두가 이야기하긴 하지만, 난 도통 이해를 못하겠어.”

잠깐의 침묵 후, 사라의 목소리는 감정에 가득 담긴 채, “무슨 말이야? 눈을 감아도 머릿 속에서 아무것도 안 보여?”
나는 혼란스러움이 밀려왔다. “응. 눈을 감으면 어둠 뿐인데? 아무 것도 안 보여.”

사라는 낮고 온화하게, 말을 신중하게 선택한 것 같았다. “그, 아마도 너 ‘아판타지아’인지도 몰라. 머릿 속에서 이미지를 시각화하지 못하는 거야.”

아판타지아? 용어는 낯설었지만, 그녀의 말의 무게가 나를 굳게 누르는 듯했다.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뇌를 가진 것을 평생 모르고 살았던 걸 깨달았다. 다른 사람들은 마음 속에서 생생한 이미지와 장면을 만들어내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, 나는 그렇지 못했다. 그 사실이 무거운 짐처럼 다가왔다.

그 밤, 침대에 누워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애를 썼다. 나는 이제 낯선 사람이 된 듯했다. 다른 사람들의 활기찬 상상력으로부터 끊어져 있는 듯했다. 양을 세면서 잠드는 것조차도 허황된 꿈처럼 느껴졌다. 눈을 감았을 때 나타나는 어둠은 나의 고립의 상징이 되었고, 이것은 다시는 잇지 못할 것 같은 공허함이었다. 날이 지나면서 절망은 더욱 깊어졌다.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피했다. 그들이 나를 다르게 대할까 두려웠다. 그래서 나는 이 새로운 인식을 대처하려고 노력했지만, 주변 세계와 점점 더 큰 간극을 느끼게 되었다.

어느 저녁, 선명한 색상으로 물든 해가 떠오르는 동안, 나는 아판타지아에 대해 처음 배운 그 동일한 참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. 눈 앞에 가족 다람쥐들이 서로를 재미있게 쫓아가는 장면에 머물렀다. 그 순간, 이상한 평온감이 나를 휩쓸었다. 시각화하는 능력이 없더라도, 다른 감각을 통해 여전히 삶의 간단한 기쁨들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.

눈을 감고 주변 소리에 집중했다 –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, 먼 곳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, 부드러운 바람이 피부를 쓸어가는 소리 등. 나는 내 상태에 불구하고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했다.
시간이 흐름에 따라, 다른 창조적인 방식을 통해 위로를 찾았다. 글쓰기를 시작했고, 감정을 종이 위에 쏟아내며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생생한 이야기를 만들었다. 나의 글은 내 고유한 캔버스 위에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, 독자들과 공유하는 감정을 묘사했다.

사라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, 나는 아판타지아라는 한계를 넘어서는 연결을 느꼈다. 그들은 내가 묘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, 그 교환 속에서 수용과 이해를 얻었다.

비록 여정은 힘들었지만, 다르다는 것이 곧 상처받은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. 나는 아판타지아를 받아들이며, 그것이 나를 독특하게 만드는 일부분으로 받아들였다. 그리고 그 받아들임 속에서 평화를 찾았다.

그래서 나는 이제 세상과의 연결이 끊긴 듯한 사람이 아닌,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. 그 세계는 머리 속 캔버스가 아닌 내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진다. 나의 삶은 인간의 영혼의 비현실적인 마법이 있는 곳에 참된 아름다움이 있는 것을 상기시키는 증거가 되었다.

김건이 Keonyi Kim 옮김

Keonyi Kim

NLCS Hub Chief Director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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